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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EONG GANDHI

3학년

2020 1학기 학기말 에세이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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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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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한계

최윤정

힘없는 시작, 어수선한 분위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 어려운 조합이라 그런 것일까. 적어도 나에겐 여러모로 힘든 한 학기였다.

학기 초. 아니 겨울 방학 때부터 부담감을 품에 안고 살았다. 그저 3년이기 때문에 붙는 책임감 때문이다. 정 신경 쓰인다면 내 알 바 아닌 듯 모른 채 살아가면 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모든 일이 말로만 쉬운 거 같고, 내게만 공격적인 거 같다.

시작이 유독 힘이 없었던 건 코로나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학교는 2주간 개학을 연기했고, 뒤에는 마지못해 집중 기간도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학사 일정이 조금씩 밀려서 짧은 시간에 해내야 하는 일도 많았고, 한주마다 이어지는 큰 행사도 감당해야 했다. 그런 일정 탓에 기운이 빠졌고, 그 에너지 덕에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다. 조금이라도 사이가 틀어지거나 다투면 잠을 못자고, 소외감이 느껴지면 불안해서 혼자 있지 못한다. 반복하다 보니 지쳐버렸다.

어릴 적 습관에서 비롯된 애정결핍인지, 원래 나의 성향인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의 무시가 싫다. 찌푸린 얼굴, 짜증나 있는 말투, 차가운 눈빛. 그런 행동을 보면 흠칫하게 된다. 어색하게 맴도는 싸한 기운에 괜히 기분 나빠진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내가 그 표정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아 눈치를 본다.

올해는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무작정. 무엇이든 간에 집착하지 않았다. 상처 안 받으려고 미워하고, 마음을 관념으로 억눌렀다. 사실 마음고생은 비슷하다. 오히려 더 아픈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더는 나를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아무리 많은 걸 배워가도 사람을 대할 때의 적절한 자세는 잘 모르겠다. 허무하다.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요즘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겐 벅찬 욕심이겠지만, 후배에게는 착한 선배로 기억되고 싶고 동기한테는 가까운 사람이고 싶었다.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어려운 사람이 되기는 더 싫었다. 너무 모순적이라 이도 저도 못하는 사람으로 남을 거 같아 두렵다.

이번 학기에 자존감이 낮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나까지 인정해버리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 같았고, 불안정한 사람은 이해받기 어려울 거 같았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보다. 그렇다. 지금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자존감의 한계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내게 제일 많은 스트레스를 건네준 건 졸업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나한테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자신이 없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 또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해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원래 행복한 시간보다 지독하게 쓰린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나름대로 기억에 남을 한 학기였다.

불안한 심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나도 내 글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내 비추고 싶다. 그렇지만 이유나 목적 없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쓸 자신은 여전히 없기에. 학기 말 에세이 이름을 빌렸다. 그러니까 우울하고 잘 적은 글이 아닐지라도 숨기지 않을 거다.

말장난하는 것 같은 글로 애써 있어 보이는 척하는 나를. 그대들도 애써 모른 척해주면 좋겠다.

20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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